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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이야기] 제갈량(제갈공명)은 정말 전략, 전술의 천재였을까? 삼국지 정사로 알아본 제갈량

삼국지 이야기

by 하이(hi)스토리(story) 2021. 4. 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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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이야기] 제갈량(제갈공명)은 정말 전략, 전술의 천재였을까? 삼국지 정사로 알아본 제갈량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갈량은 모두들 잘 알고 계시죠, 삼국지연의에서는 뛰어난 계략으로 항상 승리를 이루어내는 전략/전술의 천재로 묘사되는데요, 과연 제갈량은 정말 전략 전술의 천재였는지 삼국지 정사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정사 삼국지에 의하면 진수의 평으로 상국(相國)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고 되어 있다. 계한보신찬에는 제갈량이 선제(유비)의 유명을 받아 재상이 되었다고 나오는데 제갈량은 이미 유비 생전에 승상이었으므로 상국은 이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상국은 최고 재상인 승상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왕보다 높고 황태자와 같은 급이며 황제 바로 밑인 엄청난 벼슬이다. 상국이라는 직책이 워낙에 엄청나다 보니 제갈량 이전에는 전한의 소하, 조참, 번쾌, 여산, 후한의 동탁만이 이 지위에 올랐다. 다만, 여산은 여씨 일족의 후광으로 얻었고, 동탁은 황제를 협박하여 강제로 빼앗은 직위라서 제대로 된 상국은 사실상 소하, 조참, 번쾌, 제갈량 네 명뿐이다. 더불어, 제갈량 사후에는 촉한에서 상국은 물론이고 승상도 영구 결석이 되면서, 멸망 때까지 승상이 된 자는 아무도 없다.

 

정사를 기준으로 단순한 사실들만 보면 제갈량이 칭송받는 게 의아할 수 있다. 제갈량은 관우나 장비, 여포 같은 무력이 뛰어난 장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연의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산귀모의 신비한 책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량이 명재상으로 평가받는 데에는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과 더불어 고금을 통틀어서도 최고의 행정관 중 하나였다는 점에 있다. 효율적인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경제를 중흥시켜 국력을 증진시켰으며 이로 인해 이릉대전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촉은 수차례 북벌을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흔히 소설이나 미디어의 영향으로 뛰어난 전술 및 계략이나 압도적인 무력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중요한 조건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을 비롯해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전근대 전쟁에서는 현대전에 비하면 전술적인 대승 몇번만으로 병력 차이와 국가 체급 차이를 뒤집고 전쟁에서 이겼던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다른 변수에서는 병력이 적은 쪽이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고 운도 많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양쪽의 다른 변수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으면 병력 차이를 뒤집는건 매우 힘든 일이고 그 병력 차이를 효과적으로 벌리고 유지할 수 있는 행정과 보급은 전근대 전쟁에도 매우 중요했다. 한니발, 항우, 사자왕 리차드 1세 등 뛰어난 전술적 능력이나 무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쟁에서 패한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히 많다.

 

컴퓨터나 통신체계 심지어 인쇄술도 발달하지 않았던 삼국시대에 보급체계를 운용하고 관리하는것은 엄청난 난제이다. 이것은 제갈량이 삼국시대의 인물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부분이였다. 그는 부대 내에서 최적의 보급과 운용을 할 수 있는 이동체계를 항상 고민했으며 진영을 세울 때도 늘 정교하고 화려하게 구축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보다 높은 확률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북벌 당시 제갈량에 맞서 싸웠던 위나라가 압도적인 국력과 훌륭한 사령관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이끄는 군대와 정면대결을 회피하거나 야전에서 맞붙었을 경우 대부분 패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며, 사마의가 제갈량 사후 오장원에서 후퇴한 촉군의 진영을 보았을 때 천하의 기재라며 감탄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재능은 삼국지연의 같은 소설에서 제갈량을 부각시키기 힘들었던 부류의 재능이므로, 나관중은 신비한 책사 모습의 제갈량을 강조하였다.

 

또한 제갈량은 단순한 전쟁 사령관이 아니라 촉한의 최고 재상이다. 그것도 군주인 유선이 무능해서 최소한의 제사와 외교 행사에서의 얼굴마담 역할을 제외한 실무는 모두 제갈량에게 권력을 위임했기 때문에, 제갈량은 전쟁만 하는게 아니라 국가를 직접 경영한 사람이다. 제갈량은 전쟁을 위한 일이 아닌 일반 내정에서도 유능하고 공정했던 점이 후대에 고평가 받는 요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제갈량이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충성심이다. 제갈량의 시호인 충무후(忠武候)를 보면 알 수 있듯 제갈량의 충성심은 예로부터 끝없이 칭송받았다. 유비-유선 2대에 걸쳐 촉한의 중대사를 결정하고 실행했던 그는 조조에게 여러번 회유를 받았지만, 그야말로 죽어서 그만둘 때까지 삼고초려의 은혜를 잊지 않고 계속 유씨를 섬겼다. 티끌 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나라를 위해 두 번이나 출사표를 올리며 몸을 아끼지 않은 채 북벌을 벌였으니, 이것이 제갈량의 군재(軍才)나 행정력을 낮춰보는 사람은 있어도 제갈량의 충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즉, 삼국지 정사에서는 제갈량은 전략/전술의 천재가 아닌 행정, 보급에 아주 뛰어났음을 알 수 있는데요,

뛰어난 전략/전술은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지만, 원활한 보급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한다는 말처럼 제갈량은 삼국시대가 낳은 뛰어난 인물 중 한명임에는 틀림이 없을것 같습니다.

제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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